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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학

회계기준이 정치적일 수 있는 이유 — 로비와 이익집단의 영향

1. 회계기준은 중립적인가? 

많은 사람들은 회계기준을 ‘기술적 규칙’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로 회계기준은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다.
회계는 기업의 재무상태를 표시하는 언어이며, 그 언어를 누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동일한 거래라도 평가 기준이 바뀌면 이익이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다.
이는 주가, 세금, 경영자의 성과급, 정부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회계기준을 제정하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 논의가 아니라, 이익집단 간의 정치적 힘겨루기이기도 하다.
회계기준은 ‘경제적 진실’을 규정하는 법적 언어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이익과 누군가의 손해가 존재한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나 미국의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도
독립기관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정치적·경제적 세력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회계기준은 완전한 중립성을 가질 수 없으며, 정치와 경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회계기준이 정치적일 수 있는 이유 — 로비와 이익집단의 영향

 

2. 이익집단의 로비와 회계기준 제정 

회계기준 제정 과정에는 항상 이익집단(lobby groups) 의 로비가 존재한다.
특히 대기업, 산업협회, 회계법인, 금융기관 등은 자신들의 재무성과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준이 설정되길 원한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 미국에서는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인식하느냐 여부를 두고 거센 논쟁이 벌어졌다.
기준 제정기관인 FASB는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들은 이를 반대했다.
그 이유는, 비용으로 인식할 경우 순이익이 줄어들고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권과 기업의 로비가 결합하며, 회계기준은 타협된 형태로 제정되었다.
이 과정은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즉, 원래 공익을 위해 만들어진 기준 제정기구가,
결국 규제 대상인 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 포획되는 현상이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특정 업종이나 금융기관이 회계처리 기준의 유예나 완화를 요청할 때,
정책당국이 이를 수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결국 회계기준은 정책적 압력과 경제적 로비의 절묘한 균형 위에서 만들어지는 산물이다.

 

3. 정치적 회계의 실체 

회계의 정치화는 단지 민간 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 회계 또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정책적으로 세수(稅收)를 높이거나 재정건전성을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
특정 회계정책을 선택하거나 변경하는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공기업의 부채를 정부 재무제표에서 제외하거나,
사회보장기금의 회계처리를 변경해 국가부채 비율을 낮추는 방식이 그렇다.
이런 조치는 경제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된 신호를 시장에 전달한다.
정치권은 단기적 정책성과를 부각시키기 위해 회계수치를 ‘조정’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이처럼 회계는 정치적 의사소통의 도구로 이용될 때가 많다.
공공회계의 정치화는 국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재정지표가 실제보다 좋게 보이면, 정책 실패가 가려지고
다음 세대가 그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회계는 단순한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 거울이기도 하다.
회계의 정치적 이용을 막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회계기준위원회와 투명한 공시제도가 필수적이다.

 

4. 회계의 정치화를 막는 길 

회계기준이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그 해결책은 절대적 중립이 아니라 제도적 견제와 투명성 강화다.
첫째, 회계기준위원회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치권이나 특정 산업집단으로부터의 재정적·행정적 압력을 최소화하고,
공익대표와 학계, 실무 전문가가 균형 있게 참여해야 한다.
둘째, 회계윤리(Professional Ethics)를 강화해야 한다.
회계사와 감사인이 기준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고,
공공의 신뢰를 우선시하도록 교육과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공시(disclosure) 를 통해 기준 제정 과정과 의견 수렴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누가 어떤 이유로 특정 기준에 찬성하거나 반대했는지를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 기반 회계분석 시스템의 도입도 정치적 왜곡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데이터 기반 분석이 강화될수록 주관적 판단의 여지는 줄어든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회계의 정치화를 막는 것은 제도보다 사람이다.
윤리적 판단과 공익적 의식을 가진 회계전문가가 많아질 때,
비로소 회계기준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의 신뢰를 지탱하는 공공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