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FRS 도입의 배경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회계제도는 기업회계기준(K-GAAP) 에 의해 운영되었다.
이 기준은 한국 경제의 급성장과 함께 발전했지만, 국제적 신뢰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국내 회계기준은 법령 중심적이고, 세법과의 연계성이 강해 회계정보의 목적이 투명한 공시보다는 규제 준수에 더 치우쳐 있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재무제표가 실질적인 경제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국제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의 재무정보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투명성’과 ‘신뢰’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정부와 금융당국은 회계제도의 국제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 결과 국제회계기준(IFRS: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의 도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IFRS는 “원칙 중심(principle-based)”의 기준으로,
세부 규정보다는 기업의 경제적 실질(economic substance) 에 따라 회계처리를 판단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IFRS는 단순히 회계기준의 변경이 아니라, 한국 회계문화의 근본적 전환점이었다.

2. 도입 과정의 갈등과 변화
IFRS가 공식적으로 한국에 도입된 것은 2011년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기존 K-GAAP은 세세한 규정을 따라 회계처리를 수행하는 규칙 중심(rule-based) 시스템이었다.
이에 익숙한 회계사들과 기업은 갑작스러운 판단 중심의 원칙회계로의 전환에 큰 혼란을 겪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자산을 원가 기준으로 평가했지만 IFRS는 공정가치(fair value)를 강조한다.
이는 시장가격 변동을 즉각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였고,
기업의 재무제표 변동성이 커지며 경영진과 투자자 모두 불안을 느꼈다.
또한 각 기업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커지면서,
“표현의 자유”와 “회계의 일관성” 사이의 균형이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당시 회계법인과 학계에서는 “IFRS가 회계정보의 비교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FRS의 도입은 불가피했다.
국제자본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 기업은 외국 투자자에게 ‘불투명한 시장’으로 인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IFRS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언어로 받아들여졌다.
3. IFRS 도입 이후의 실질적 변화
IFRS 도입 이후 한국 회계의 풍경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첫째, 공정가치 평가(Fair Value Measurement) 의 확산이다.
자산과 부채의 평가가 시장가격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기업의 재무상태표는 과거보다 더 현실적이 되었다.
둘째, 연결재무제표(consolidated financial statements) 의 중요성이 커졌다.
지배기업과 종속기업의 전체 그룹을 하나의 경제 실체로 보고 재무정보를 공시함으로써,
그동안 감춰졌던 기업집단 내부거래와 위험이 드러나게 되었다.
셋째, 투명성(Transparency) 의 향상이다.
공시(disclosure) 항목이 늘어나고, 주석을 통한 회계정책 공개가 의무화되었다.
이는 투자자 보호뿐 아니라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부작용도 존재했다.
공정가치 측정은 시장 변동성에 따라 재무제표의 수치가 크게 흔들리는 문제를 낳았다.
예를 들어,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의 평가 손익이 기업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회계가 오히려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FRS 도입은 회계의 투명성과 국제 신뢰도 측면에서
한국 회계사(社) 역사상 가장 큰 도약이었다.
4. IFRS 이후의 과제와 한국 회계의 미래
IFRS 도입으로 형식적 제도는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지만,
이제는 판단의 질(quality of judgment) 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원칙 중심의 기준은 회계사의 윤리와 전문성이 없으면 오히려 왜곡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공정가치 평가에서 비시장성 자산의 가치를 추정할 때
과도한 낙관적 가정이 개입하면, 그 재무제표는 다시 신뢰를 잃는다.
따라서 IFRS 이후의 과제는 기준의 수용이 아니라 판단의 성숙이다.
또한 AI 회계시스템의 확산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했다.
AI는 방대한 회계데이터를 분석해 기준 적용의 일관성을 높일 수 있지만,
그 판단의 윤리적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한국 회계는 이제 단순히 국제기준을 따라가는 단계를 넘어,
한국적 회계철학을 정립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투명성과 효율성,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조화시키는 것이 그 핵심이다.
IFRS는 단순한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 회계가 ‘정직한 숫자’와 ‘인간의 판단’ 사이의 균형을 배워가는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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