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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학

숫자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 회계와 인간의 판단 오류

1. 숫자는 객관적인가? — 키워드: 회계의 객관성, 숫자의 신화, 인간의 해석

회계는 흔히 객관성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재무제표에 기록된 숫자는 냉정하고, 정확하며,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회계는 인간의 판단과 가정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자산의 감가상각 기간을 정하거나, 손상차손을 인식할 때 기업은 ‘합리적인 추정’을 해야 한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표현 자체가 주관적이다. 두 사람이 동일한 데이터를 보고도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유다. 결국 회계의 숫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해석한 경제 현실의 산물이다. 숫자는 객관적인 도구이지만, 그 숫자를 결정하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이다. 그래서 회계는 수학보다 철학에 가깝다. 기업이 ‘진실’을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재무제표도, 사실은 수많은 가정(assumption) 과 판단(judgment)이 반영된 ‘언어적 표현’인 셈이다.

 

2. 회계 속의 감정 — 키워드: 경영자의 판단, 낙관주의 편향, 손실회피 성향

숫자는 감정이 없지만, 숫자를 만드는 사람은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 회계에서 가장 흔한 인간의 판단 오류는 낙관주의 편향(optimism bias)손실회피(loss aversion) 이다. 경영자는 미래 실적을 낙관적으로 예상하는 경향이 있고, 손실을 인정하기보다는 미루려는 심리를 가진다. 이러한 감정은 회계추정에 그대로 반영된다. 예를 들어 재고자산 평가손실을 즉시 인식하기보다 “다음 분기엔 팔릴 것”이라는 기대를 이유로 늦추는 경우가 그렇다. 손실을 인정하는 순간 주가가 하락하고, 자신의 평가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회계는 인간의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지만, 결정의 흔적 속에 감정이 스며 있다. 심지어 감사인도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감사보고서에 쓰인 ‘적정’, ‘한정’이라는 단어 뒤에는 감사인의 심리적 압박과 판단의 불확실성이 숨어 있다. 회계는 감정을 숨긴 언어다. 숫자는 냉정하지만, 그 숫자를 선택한 손은 인간적이다.

 

3. 판단 오류의 구조 — 키워드: 인지편향, 프레이밍 효과, 회계적 착시

인간은 논리적 존재가 아니라, 감정과 경험의 틀 안에서 사고하는 존재다. 회계결정에서도 이러한 인지편향(cognitive bias)이 작동한다. 대표적인 예가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 다. 동일한 정보를 “손실 5%”로 제시하느냐 “이익 95% 유지”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기업의 손익보고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경영자는 ‘이익 감소’보다는 ‘비용 증가’라는 표현을 택함으로써 부정적 인상을 완화하려 한다. 또 다른 오류는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 이다. 최근에 발생한 사건이나 주변 사례가 회계추정에 과도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최근 환율 급등을 경험한 경영자는 향후 환위험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 회계는 숫자의 체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사고 패턴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를 회계적 착시(accounting illusion) 라 부르기도 한다. 숫자는 단단한 진실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불완전한 판단이 반영되어 있다.

 

4. 감정과 회계의 조화 — 키워드: 회계윤리, 판단 투명성, 인간 중심 회계

결국 회계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통제하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완전한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회계의 윤리적 가치는 ‘감정을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감정이 개입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회계기준(IFRS)이 추정과 공시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이 특정 판단을 내릴 때 어떤 가정을 두었는지, 그 근거와 한계를 명시하는 것이 신뢰를 높이는 방법이다. 현대 회계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전제로 하면서도, 투명성을 통해 그 한계를 보완하려 한다. AI 회계시스템이 등장하더라도, 인간의 판단은 여전히 핵심적이다. 왜냐하면 숫자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현실을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과 경험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계란 차가운 숫자 속에서 따뜻한 인간성을 잃지 않는 일이다. 그 균형을 유지할 때, 회계는 비로소 인간을 위한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