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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학

회계기준 제정 과정의 비하인드 — IASB의 결정구조 분석

1. 회계기준을 만드는 사람들 

국제회계기준(IFRS)은 단순한 기술 규칙의 집합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수많은 논의, 이해관계, 정치적 조정이 존재한다.
이 복잡한 과정을 총괄하는 기관이 바로 IASB(International Accounting Standards Board, 국제회계기준위원회) 다.
IASB는 2001년 런던에 설립되어, 전 세계 140여 개국이 따르는 IFRS를 제정·개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표면적으로 IASB는 “독립적이고 공익 중심의 비영리 기구”로 소개되지만,
그 결정 구조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중립적인 전문가 집단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회계기준은 단순한 수학적 규칙이 아니라,
기업과 투자자, 국가, 산업 간의 이해가 충돌하는 정책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IASB는 이러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도 “공정한 정보 제공”이라는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
복잡한 균형의 기구다.
즉, IFRS는 수학 공식이 아니라 협상과 설득의 산물이며,
IASB의 결정구조는 그 협상의 메커니즘을 담고 있다.

 

회계기준 제정 과정의 비하인드 — IASB의 결정구조 분석

 

2. IASB의 의사결정 구조

IASB의 공식 조직은 IFRS 재단(IFRS Foundation) 아래에 위치한다.
IFRS 재단은 전체 전략과 재정 운영을 관리하고,
IASB는 실제 회계기준을 제정하는 실무 기구로서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IASB는 약 14명의 보드 멤버(Board Members)로 구성되며,
이들은 회계, 금융, 학계, 규제 분야의 전문가들로 선발된다.
하지만 선발 과정은 완전한 공개 절차가 아니다.
후보자 추천은 IFRS 재단의 신탁이사회(Trustees) 가 주도하고,
이사회는 다시 각국의 회계기준기관, 금융감독당국, 대형 회계법인 네트워크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즉, IASB는 형식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글로벌 회계·금융 권력 네트워크의 이해가 얽힌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IASB의 기준 제정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① 연구 프로젝트 → ② 토의 문서(Discussion Paper) 발표 → ③ 공개초안(Exposure Draft) → ④ 최종 기준 공표.
이 과정에서 각국 규제기관과 산업단체, 회계법인이 의견서를 제출하지만,
최종 결정권은 오직 IASB에 있다.
즉, 의견 수렴은 민주적 절차처럼 보이지만,
최종 결정은 소수 전문가의 판단과 내부 합의로 귀결된다.

 

3. 결정구조의 한계와 정치성 

IASB의 결정구조는 “독립적”이라는 명분 아래 민주적 통제의 사각지대를 갖는다.
특히 미국, 영국, 유럽연합 등 자본시장이 큰 국가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IFRS 재단의 자금 상당 부분이 이들 지역의 회계법인과 기관 투자자로부터 지원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IFRS 제정 과정에서 선진 금융시장 중심의 시각이 우세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공정가치(fair value) 회계의 확대는
투자자 중심의 시장경제 국가에는 유리하지만,
산업자본 중심의 국가나 중소기업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 때문에 일부 개발도상국은 IFRS를 “글로벌 회계의 식민화”로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글로벌 회계법인(Big 4: Deloitte, PwC, EY, KPMG)은
IASB의 자문위원회와 워킹그룹에 참여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는 일종의 ‘지식 로비(Knowledge Lobby)’ 로 볼 수 있다.
이들은 회계기준의 방향이 자신들의 감사·컨설팅 서비스 구조에 유리하도록 설계되기를 원한다.
따라서 IASB의 결정은 종종 “기술적 판단”보다 “정치적 타협”의 결과가 된다.
이는 국제회계기준의 공정성을 위협하는 잠재적 요인이다.

 

4. 투명성과 신뢰를 위한 개혁 방향

IASB의 결정구조를 진정한 글로벌 표준화 체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현재는 토의 문서와 공개초안 단계에서만 의견이 공개되지만,
실질적 토론과 합의 과정은 대부분 비공개 회의에서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기준 제정의 합리성과 객관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따라서 회의록의 전면 공개, 보드 멤버의 이해관계 명시,
자금 출처의 투명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현재 IASB 멤버의 다수가 유럽과 북미 출신으로,
아시아·아프리카의 회계 현실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IFRS의 글로벌 수용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셋째, 윤리적 거버넌스(Ethical Governance) 를 제도화해야 한다.
회계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의 언어이기 때문에,
결정구조의 윤리가 담보되지 않으면 IFRS의 권위도 흔들린다.
AI 회계, ESG 공시 등 새로운 과제를 앞둔 지금,
IASB는 단순히 기준을 만드는 기구가 아니라
전 세계 회계윤리를 선도하는 공공적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