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험이 윤리를 대체한 구조
회계윤리는 모든 회계제도의 근간이다.
그러나 현실의 회계사 양성 제도는 이 윤리를 시험의 한 과목으로만 취급한다.
자격시험은 지식의 깊이보다 암기의 정확성을 평가한다.
즉, ‘무엇이 옳은가’를 묻지 않고, ‘어떤 규정을 외웠는가’를 묻는다.
이로 인해 윤리는 시험 통과를 위한 형식적 요건(formality) 으로 전락한다.
수험생들은 실제 윤리적 딜레마를 고민하기보다,
“이 상황에서의 정답은 무엇인가?”를 찾는 데 집중한다.
그 결과, 자격증을 딴 후에도
회계사는 ‘법적으로 문제없는 선택’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회계윤리가 규정의 암기에서 멈추고, 가치판단으로 나아가지 못한 구조적 한계다.
시험제도가 윤리의 내면화를 방해하고,
‘정직한 판단’을 ‘효율적 답안’으로 대체하게 만든다.
결국, 윤리를 배운 회계사는 많지만,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회계사는 점점 줄어든다.

2. 교육의 형식화와 실천의 단절
회계윤리 교육이 실패하는 두 번째 이유는 실무와의 단절이다.
윤리 과목은 주로 강의실 안에서 법규·사례·조항 중심으로 가르쳐진다.
교재에는 “분식회계는 금지된다”, “이해상충을 피해야 한다”는 문장이 반복된다.
그러나 실제 회계현장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회계사는 고객의 압박, 경영진의 지시, 시장의 기대 등
다층적 이해관계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
이때 단순히 ‘법적으로 옳은 선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윤리교육이 실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학생들은 윤리를 비현실적 교과목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시험을 통과한 순간 윤리는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이는 ‘도덕적 무감각(moral numbness)’을 낳는다.
윤리적 판단은 실제 경험과 연결되어야 학습이 지속된다.
그러나 한국의 회계사 교육은 여전히
‘정답 중심의 윤리교육’에 머물러 있다.
이론적 윤리는 머리로 배우지만,
실제 윤리는 가슴과 행동으로 체화되지 않는다.
3. 윤리적 사고를 가로막는 시험의 함정
시험 중심의 회계사 양성 시스템은
윤리적 사고를 방해하는 경쟁문화(competitive culture) 를 강화한다.
모든 수험생은 합격이라는 목표 아래
지식의 양과 속도를 겨룬다.
이 과정에서 “도덕적 성찰”은 비효율적이며,
“점수화 가능한 지식”만이 생존의 도구가 된다.
시험은 윤리의 깊이를 측정하지 못한다.
가령, 한 회계사가 재무제표 조작을 제안받았을 때
그가 어떤 내적 갈등을 겪는지,
그 상황에서 어떤 윤리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지를
시험문항으로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시험제도는 윤리적 사고의 맥락을 단절시키고,
정답을 외운 ‘기술자형 회계사’를 양산한다.
이들은 법규에는 정통하지만,
진실을 지킬 용기에는 익숙하지 않다.
윤리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실패와 유혹 속에서 형성되는 태도(attitude) 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는 그 태도를 평가할 방법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4. 윤리교육의 재설계
이제 회계윤리 교육은 시험이 아닌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
윤리는 강의실에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며 체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회계사 교육에는 실제 사례 기반의 시뮬레이션(Simulation) 과
윤리적 의사결정 훈련(Ethical Decision Training)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회계사가 고객사로부터
“이번 분기만 매출을 조금 앞당겨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 상황을 가상으로 체험하고 토론하게 해야 한다.
윤리교육의 목표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질문을 끝까지 붙잡는 능력이다.
또한, 시험 중심의 선발방식 대신
면접·실무평가·인성검증 등 윤리적 적합성 평가(Ethical Fit Test) 가 필요하다.
회계는 인간이 하는 일이다.
따라서 윤리교육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며,
법이 아니라 양심의 지속성(sustainability of conscience) 이다.
윤리적 회계사는 시험 점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진실 앞에서 양심을 지킬 수 있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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