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숫자의 유혹
분식회계는 단순한 부정행위가 아니다.
그 출발점은 인간의 심리적 유혹(psychological temptation) 에 있다.
기업의 경영진은 언제나 ‘성과’라는 수치를 평가받는다.
매출 성장, 이익률, 주가 — 이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된다.
그런데 시장의 기대치와 실제 성과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그 불안을 메우기 위해 ‘조금만 손보면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스며든다.
바로 이 작은 타협이 분식회계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일시적 착오처럼 느껴지지만,
그 조정이 반복되면 기업의 재무제표는 현실과 괴리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기만(self-deception)’ 이라 부른다.
즉, 자신이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시장 기대에 맞게 현실을 조정한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성과주의 문화가 강한 조직일수록 이러한 자기기만이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숫자는 감정을 감추지만, 욕망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결국 분식회계는 회계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불안과 욕망이 만들어낸 심리적 결과물이다.

2. 도덕적 이탈의 메커니즘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악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가 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이러한 현상은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 이라는 심리적 방어기제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음을 알지만,
그 책임을 “상사의 지시”, “조직의 관행”, “시장 압력” 등 외부 요인으로 전가한다.
특히 조직 내부의 집단사고(groupthink)는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이번 분기만 넘기자”라는 집단적 합의는
개인의 윤리의식을 마비시키고, 불법을 ‘전략적 판단’으로 포장한다.
이 과정에서 회계라는 언어는 도덕적 완충장치(buffer) 역할을 한다.
“이건 조정이지 조작이 아니다.”
“일시적 처리일 뿐, 내년에 바로잡을 수 있다.”
이런 식의 언어적 완화는 실제 행위의 심각성을 희석시킨다.
결국, 숫자를 조작한 손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 조작을 ‘정당한 경영 판단’으로 믿게 되는 마음이다.
분식회계의 근본 원인은 회계시스템이 아니라
도덕적 인식의 구조적 붕괴다.
3. 시스템보다 강한 압력
분식회계는 개인의 탐욕보다 조직 시스템의 설계 오류에서 비롯된다.
성과가 곧 생존인 구조에서는, 숫자를 조작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여겨진다.
기업은 이익 목표를 초과 달성한 임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고,
실패한 팀에는 인사 불이익을 준다.
이런 환경에서 회계는 ‘진실의 언어’가 아니라 **‘성과의 언어’**로 변질된다.
또한, 경영진은 단기 실적을 통해 시장 신뢰를 유지하려고 한다.
투자자와 주가의 압박은 회계담당자에게 묵시적 명령(implicit command) 으로 작용한다.
“이번 분기만 버티자.” “다음 분기엔 진짜 개선된다.”
이러한 구조적 압박이 반복될수록 회계부정은 관행화된다.
특히 내부통제 시스템이 형식적으로만 운영되는 조직에서는
감사인이 이를 인지하기 어렵다.
결국 분식회계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윤리 대신 성과를 우선시하는 문화적 질병(cultural pathology) 이다.
숫자는 인간이 만든 규칙 안에서만 진실하지만,
그 규칙이 잘못 설계되면 숫자도 거짓을 말한다.
4. 신뢰 회복의 심리학
분식회계의 반대말은 ‘정직한 회계’가 아니라 **‘투명한 조직문화’**다.
아무리 정교한 회계기준과 감리시스템을 만들어도,
사람이 스스로 진실을 왜곡한다면 제도는 무력하다.
따라서 회계윤리의 회복은 기술적 통제가 아니라 심리적 자각에서 시작된다.
회계사와 경영자는 숫자 뒤에 숨은 인간의 욕망을 인식해야 한다.
성과주의의 구조를 바꾸고, 단기 실적이 아닌 장기 신뢰를 보상하는
조직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
또한 내부감사와 외부감사의 목적도 단순히 ‘적발’이 아니라,
‘신뢰를 재건하는 피드백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AI·데이터 기반 감시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윤리적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숫자를 바로잡는 것은 알고리즘이지만,
진실을 회복하는 것은 양심(conscience) 이다.
결국 회계의 심장은 계산이 아니라 믿음이며,
신뢰 없는 회계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분식회계의 심리학이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
진실을 숨기려는 인간의 본능보다, 그것을 직시하려는 용기가 더 큰 가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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